단타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여성억압의 역사 넘어서려 한 페미니스트 대중소설 [플랫]
본문
그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넋두리를 들으면서 이들이 “자신에게 없는 어떤 힘, 어떤 거대한 능력을 간절히 소망하고(73쪽)” 있다고 여긴다. 이 소망을 대리 실현해줄 강민주는 지금까지 남성의 소유물이었던 돈과 지적인 능력, 물리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더욱이 그는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분노와 한, 슬픔을 장착하고 있다고도 단언한다. 그렇기에 그는 “응징의 대리인”(74쪽) 자격으로 당대 인기배우인 백승하를 납치한다. 백승하는 여성들에게 부드러운 남성이라는 이상적 남성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한편 남성 지배의 역사, 폭력의 역사를 은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획은 지금까지 남성들이 수행했던 지배와 통치를 ‘미러링’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컨대 “사흘에 한 번은 두들겨 패야 다소곳하다는 점에서는 남자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저는 이번 기회에 확인하였답니다.”(225쪽), “남자가 많이 알면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바깥일은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그저 잘 생기거나 부드러운 남자면 족합니다.”(226쪽)와 같은 말들은 남성들이 흔히 쓰는 지배의 언어를 차용한 미러링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계획’이나 ‘기록’에 충실하고, 기존에 남성성의 특징으로 여겨졌던 이성과 실천력을 갖춘 여성, 경제력뿐만 아니라 지적 탁월성으로도 두 남자-황남기와 백승하를 지배하는 비범하고 우월한 여성을 보게 된다. 황남기와 백승하라는 두 남자를 길들이기 위해 채찍과 회유라는 남성의 전통적인 지배 방식을 쓰는 것도 그이다. 그렇다면 남성 지배를 뒤집고, 뒤바뀐 역할을 수행하는 역담론의 방식은 정당한가? 그리고 실현 가능한가?
‘여자와 남자’라는 장을 여는 강민주의 노트는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여성의 것으로 뒤집어 상상한다. “남성 중심 사회가 야기한 온갖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 그 유일한 대안이 여성 중심 사회와 그녀들의 지배”다. “바뀌어야 한다. 대안은 하나뿐이다. 하늘의 절반을 차지하고 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성(性), 여성이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굳어진 이 세상 것들을 모두 부드럽게 풀어줘야 한다. 목숨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남성들에게 모성의 위대함을 가르쳐야 한다. 남성들이 강탈해간 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267쪽) “~한다”라는 정언명제로 이어지는 이 선언은 세상 것들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여성성·모성성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방식과 결과를 권력의 탈취와 여성 지배로 설정하고 있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강민주의 페미니스트 기획이 서서히 좌초돼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납치해 길들이는 한편 세상에 납치 의도를 밝히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한다. 그러나 자신이 상상과 관념으로 구축한 백승하의 부드러움이 현실인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변화한다. “힘없는 집단에 가해지는 착취와 학대를 단죄하는 정의”(217쪽)를 실현하기 위해 남성의 대표-재현으로 선택했던 백승하가 사실은 강민주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논리보다는 감정,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구현한 부드러움을 지닌 살아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변화는 강민주가 ‘나’라는 주어를 버리고, 자신과 백승하를 ‘우리’로 지칭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백승하의 요청으로 기획된 이오네스코의 연극 <수업>을 상연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다고 여겼던 황남기에게 살해당한다. 결국 ‘나’ 강민주는 여성들의 복수를 실현하지 못할 뿐더러 다른 여성들처럼 남성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강민주의 페미니스트 기획이 실패한 이유는 애초에 텍스트주의에 기반한 관념 위에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바처럼 “엄정한 리얼리즘의 시선을 유보”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질서와 현실을 전도한 상상적인 구도에서 시작했다. 나 강민주는 남성 중심 사회에 역테러를 시도한다. 소설은 납치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썼던 일기, ‘절망의 텍스트’라 명명한 여성들의 상담 사연, 신문사에 보낸 편지 등 나 강민주의 텍스트를 곳곳에 배치한다. 이 텍스트들은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의 유구한 역사를 끊어내기 위해 자신이 ‘남자들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자신이 보통 여성들의 대리인이자 초월자임을 설파한다. 그런데 전반부의 당당하고 전투적이었던 강민주는 백승하의 부드러움에 감화돼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상실하고, 소설 마지막에 오면 서사에서 죽음으로 사라진다. 그의 의도는 백승하와 황남기의 진술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나와 우리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그 남자들의 목소리만 남는 셈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텍스트로, 구조적 결함을 넘어 파탄에 이른 작품으로 발표 당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런 본격문학 장의 평가와는 정반대로 이 소설은 1992년 당시에도 3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영화와 연극으로도 상연됐다.
2025년 올해는 2015년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차다. 양귀자의 소설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새로운 문학적 주체로 떠오른 20~30대 여성 독자들에 의해서 간행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소환되고 있다. 2019년 4월 ‘도서출판 쓰다’에서 간행된 3판은 2025년 2월 기준 54쇄를 기록했다고 한다. 여성-청년 독자들은 고독한 여성 단독자의 선언문과 로맨스와 범죄 서사가 뒤섞인 이 소설을 모종의 하위문학으로 수용하거나, 여성혐오와 백래시에 대한 상상적 저항의 텍스트로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출간 당시 작가의 여성 문제 인식의 추상성을 지적하면서 여성 현실에 대한 구체성을 망각했다는 식의 엄숙한 비평언어로는 이 소설의 긴 생명력을 해명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여성 억압의 역사를 목격하고 체험하고, 그 역사를 넘어서려 했던 작가와 독자가 함께 쓰고 기획한 페미니스트 대중소설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 선언이라는 서사의 급진성이 끝까지 관철되지 않고, 여성성과 모성성이라는 대안적 세계관으로 서둘러 봉합하려 한 점, 그 봉합이 여성의 목소리를 소거한 채 이루어진 점은 못내 아쉽다. 애초의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갔다면, 이 소설은 페미니스트 사변소설(SF·speculative fiction), 도발적인 페미니즘 대중소설의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김양선 한림대학교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문학평론가
▶[지난시리즈] 권여선 ‘푸르른 틈새’, 자기의 진실 찾는 여성 작가와 독자의 탄생
대기업 계열 e커머스들이 역대급 폭염에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파격 할인경쟁에 나섰다.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에서 ‘형님’ 격인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물론 ‘동생’격인 e커머스까지 제외되자 여름 성수기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1일 e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 계열 e커머스들이 파격 할인가를 무기로 총출동한다. 대표적으로 SSG닷컴은 새롭게 선보인 ‘미식관’의 유명 맛집 셰프 간편식 30여종을 ‘다다익선’ 특가에 내놓는다. 오는 24일까지 셰프 협업 상품 2개 구매 시 10%, 3개 이상 구매 시 15%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을지로보석’ 조서형 셰프, ‘카덴’ 정호영 셰프, ‘잭앤더’ 이은정 셰프, ‘면서울’ 김도윤 셰프 등의 간편식이 대표적이다.
W컨셉은 올여름 가장 뜨거운 쇼핑 축제를 테마로 한 ‘서머페스타’ 행사를 이달 말까지 연다. 여름 의류, 뷰티, 가방 등 패션 아이템을 한자리에 모아 최대 8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매일 오전 10시에는 24시간 브랜드 세일, 24시간 단 하루 특가 코너를 통해 라메레이, 마크모크, 브아빗포우먼, 아워코모스 등 인기 브랜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옥션은 21일 하루 동안 CJ제일제당과 함께 ‘극한특가’ 행사를 열고 여름 인기 식품을 최대 45% 할인 판매한다. 동치미 냉면육수와 물냉면, 더건강한 닭가슴살, 얼티브 프로틴 음료, 햇반죽 보양죽 등이 대표적이다. 백설 참기름과 스팸 클래식, 해물 다시다 등은 1+1에, 비비고 만두와 고메 크리스피 치킨 등은 1만9900원 균일가에 내놓는다. 극한특가 전용 최대 20% 할인쿠폰과 브랜드 중복할인 쿠폰도 준다.
SK스퀘어 자회사 11번가는 패션·뷰티·리빙 카테고리의 ‘찐 인기템’을 최대 75% 할인 판매하는 ‘찐템페스타’를 펼친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브랜드·트렌드 패션과 뷰티, 리빙 카테고리에서 각각 5개의 브랜드를 선정해 특가로 판매하는 ‘브랜드 데이’ 코너를 운영한다. 대표적으로 구찌, 아뜨랑스, 하림펫푸드(21~22일), 에잇세컨즈, 공구우먼, 헤어플러스(25~27일), 폴햄, 바닐라코, 한샘(28~29일) 등 총 20개 인기 브랜드가 참여한다.
화장품 카테고리도 준비했다. 5000원 초특가 ‘선착순 체험딜’에서는 에뛰드 수분가득 콜라겐 아이크림, 리코셀 퍼팩트맨 로맨틱 레드 스킨로션 3종 세트 등을 무료배송으로 판매한다. 클리오, 네이처리퍼블릭, 싸이닉, 센텔리안24 등 30개 인기 뷰티 브랜드의 럭키박스는 최대 75% 할인한 2만원 균일가에 내놓는다.
롯데쇼핑의 e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은 오는 24일부터 31일까지 ‘앱쁠페스타’를 펼친다. ‘앱쁠페스타’는 매월 셋째 주 앱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전용 특가와 단독 혜택을 제공하는 상시 프로모션이다. 이번 행사는 ‘온국민 생활비 세이브’를 주제로 고물가 시대 실질적인 소비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물가안정 특집으로 기획됐다. 식음료, 뷰티, 주방용품, 패션 등 실생활에 밀접한 분야의 브랜드가 대거 참여한다. 대표적으로 오는 25일에는 에스쁘아 워터 스플래쉬 선크림 세라마이드 1+1을 1만6460원에, 오는 26일에는 베이직엘르 여성인 후드 집업 래쉬가드 비치반바지 레깅스 세트를 2만7300원에 판다. 또 오는 30일에는 와키윌리 그래픽 키키 와펜 반팔 티셔츠를 1만8240원에, 31일에는 사조참치 100g 20캔을 2만4190원에 각각 내놓는다.
워터밤의 계절이다. 워터밤은 관객과 아티스트가 물총싸움을 하는 참여형 페스티벌로, 2015년 처음 개최되었다. 물 낭비, 일회용 물총 쓰레기 생산, 성희롱과 안전 문제 등 논란이 매해 반복되지만 워터밤은 올해에도 죽지 않고 돌아왔다. 그말인 즉, 워터밤에 수반되는 섹슈얼리티의 발산을 둘러싼 논의 또한 ‘밤(bomb)’되는 시기란 뜻이다. 노출이나 섹스어필이 강한 워터밤 무대가 끝나면, 알고리즘이나 일상 대화에서 “워터밤 OOO”가 여름날 초파리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솔로가수 권은비의 퍼포먼스. 2023년 권은비는 ‘워터밤 여신’으로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솔로곡 <언더워터>를 역주행 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개인의 무대 수행 능력과 육체적 매력이 결합한 결과였다. 올해에도 권은비의 무대는 관심과 화제의 중심이었고, 다양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워터밤이 분출하는 신체 이미지를 찬양하는 목소리와 비판하고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저마다의 맥락과 의도가 얽혀 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워터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넘쳐나는 여성 육체의 재현, 이를 둘러싼 논의는 결국 여성이 어떻게 주체가 될 수 있는가와 같은 정치적 질문과 연루된다.
멧갈라에 간 제니, 워터밤에 간 권은비, 트월킹을 추는 걸그룹과 여성 댄서…여성의 성적 매력 어필과 신체는 오늘날 ‘과하다’라고 여겨질 만큼 흔한 시각적 정보다. 그런데 언제나 문제시되는 것,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로지 여성의 몸이다. 여성이 육체를 드러내고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행위에는 상충하는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가부장제와 성적 엄숙주의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여성을 육체적 존재로 제한하고 관음하는 가부장제의 욕망과 여성의 몸을 자원으로 삼는 산업에 착취당할 위험. 누군가는 드러난 육체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누군가는 ‘싸매라’고 오열한다. 이 분열을 김주현의 저서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책세상, 2009)의 사유에 기대 성찰해 보자. 김주현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통제함으로써, 즉 노출이나 외모 꾸미기를 중단함으로써 가부장제의 대상화와 착취에 저항하고자 하는 선택을 ‘미적 금욕주의’라고 명명했다. 이 아해는 꾸미기를 멈추고 몸을 가리라고 한다. 한편 전통적인 여성미를 여성의 긍정적 미덕으로 보고 이를 강화하는 전략은 ‘도취적 나르시시즘’이다. 이 아해는 여성들이 외모 권력을 통해 가부장제의 시선을 역전 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워터밤 여신’이나 ‘섹시 직캠’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인플루언서처럼 아름다움 자체가 직업이 되는 현실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섹슈얼리티는 언뜻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성중심주의 미학은 여성을 미적으로 경멸해왔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여성들의 미는 ‘신체미’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이는 여성을 육체적 존재로 제한하며, 여성에게는 정신이나 이성이 깃들지 않는다고 보았다(113쪽). 실제로는 지적이고 영민했던 마릴린 먼로를 ‘백치’의 이미지에 가두거나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이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로스쿨에서 철저히 무시 받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여성의 신체미조차 남성적 기준을 따르기에 여성은 남성 쾌락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폄하다. 소위 말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권력자가) ‘보시기 좋은 것’으로 구성되었으니, 아름다움을 소유한 여성조차도 결국은 주체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이 전부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성이 아름다움으로 무언가를 획득하면 이를 부당한 거래로 취급한다. 대상의 쾌락을 위한 것이기에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할 수 없다. 미적 금욕주의는 이러한 경멸을 벗어나고자, ‘아름답고자 하는 욕망’을 줄이기를 선택하는 전략이다. 여성이 신체미에 국한되지 않는 존재라고 선언하고 대상화를 거부하는 것이다(114-115쪽). 목적과 전략의 차원에서 탈코르셋 운동 또한 이 갈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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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금욕주의는 보호의 외피를 두르기에 일견 매력적으로 보인다. 현실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여성은 마음껏 성희롱하고 노출을 요구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성폭력 문화를 바로잡는 일은 너무 아득하고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여성들이 몸을 가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조절하는 것은 훨씬 쉽고 빠른 해결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문제는 몸이나 성적 대상화 그 자체가 아니다. 올해 워터밤에서 엑소의 카이가 잘 관리한 몸을 드러냈을 때, 남성은 아무도 그를 꽁꽁 싸매서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성적 대상화는 매력을 주고받는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신체와 호감을 자원으로 삼는 케이팝 산업에서는 필수적이다. 핵심은 성적 대상화가 성적 물화—개인이 신체의 일부로 불리거나, 몸이 전부인 존재로 여겨지거나, 감정이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희롱하거나 침범해도 되는 것으로 취급하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이다. “여성이 외모에 관심을 갖고 멋을 내면 남성적 시선의 대상이 될 뿐이니 외모 꾸미기에 무관심해져라”(116쪽)라는 미적 금욕주의는 여성을 멸시하는 전제를 그대로 둔 채, 멸시를 피할 방법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최악의 경우는 미적 금욕주의자들의 탈심미화가 곧바로 여성 스스로 여성임을 부정하는 탈성별화에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남성화로 귀결되는 것”(130-131)이라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렇다면 역시, 억압과 해방을 다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즐겨야 ‘쿨한’ 것일까? 도취적 나르시시즘은 “더 많은 대상화는 더 많은 권력을 가져다준다”(198쪽)고 믿으며, 마돈나처럼 가부장제 미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마침내 욕망의 주체이자 권력의 상층부에 이른 사례를 근거로 삼는다. 실제로 마돈나와 같은 ‘퀸’이 빼어난 능력과 아름다운 외모, 섹슈얼리티를 과감하게 활용하면 여성을 ‘성적 매력은 있으나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는 순진한 소녀 또는 처녀’로 제한하는 가부장제를 일부 타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여성들 간의 위계를 만들어내고, 결국 외모 권력으로 인한 차별을 지지하게 되기에 문제적이다. 심지어 도취적 나르시시즘의 논리는 ‘여성은 예쁘게 태어난 것이 고시 3관왕’처럼, 여성이 성취할 수 있는 분야를 아름다움에 한정하는 가부장제의 언어와 흡사한 면이 있다. 워터밤 여신으로 건물주가 되었다는 신화를 내세우며 여자 연예인에게 ‘뜨고 싶으면’ 워터밤에서 노출하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실존하는 현실에서, “몇몇의 탁월한 성공담을 과시하는 것은 대부분 가부장제의 하층부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여성에게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묵묵히 순응하도록 독려하는 가부장제의 장치가 되지는 않는가?”(201쪽)
호시탐탐 ‘돈 되는’ 여성의 몸을 노리는 산업, 여성이 몸을 드러낼 때 가장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구조, 여성이 자신의 육체와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랑스러워할 때 쏟아지는 멸시(“너 그 정도 아니야”)와 조롱…. 그럼에도 질문해야 한다. 여성은 그렇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나? 뭘 해도 대상화되는 피해자일 수밖에 없으니 그저 몸을 사려야 하는가? 뿌리 깊고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이라도 싸매고 있으라기에는, 가부장제가 보호와 관리의 명목으로 여성을 통제하고 섹슈얼리티와 아름다움의 주도권을 빼앗은 역사가 이미 너무 길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섹슈얼리티는 여성 자신의 것이다. 탈취와 타자화를 두려워하여 억누르기만 한다면, 칼자루는 넘어간다. 남성적 시선을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이성애 중심적이며 오히려 남성 주체에게 권위를 부여한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대안 중 하나로 ‘저항적 나르시시즘’을 소개한다. 저항적 나르시시즘은 가부장제의 시선에서 보고 싶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몸을 실천하며 여성 신체미를 재구성하기에,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223쪽). 제멋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구성하며 다른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발산하고 만끽해보는 것이다. 현대 예술가처럼 행위 예술을 하거나 바디 호러의 주인공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외부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보기 좋지 않음’(이를테면 ‘천박해보임’)을 감지했을 때 잠깐 머물며 이것이 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성찰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성적 대상화가 성적 물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끊고 신체나 섹슈얼리티를 열등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워터밤 무대에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낸 여성이, 그렇다고 해서 폭력과 착취에 동의한 것은 아님을 명백히 하면서 말이다.
▼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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